양자컴퓨터 암호해독 경고에 '양자내성암호' 전환 앞당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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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훔쳐 두고 나중에 푼다"
양자컴퓨터가 지금의 암호 체계를 무너뜨리는 날, 이른바 'Q데이(Q-Day)'에 대비하라는 경고가 커지고 있다.
아직 그런 양자컴퓨터는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해독에 필요한 양자컴퓨터 규모 추정치가 빠르게 낮아지면서, 각국 정부와 글로벌 빅테크가 양자내성암호(PQC) 전환 시한을 잇달아 앞당기고 있다.
"생각보다 적은 큐비트로 뚫린다"
경각심을 키운 계기 중 하나는 구글 연구진이 올해 3월 공개한 백서다.
구글 양자AI팀은 비트코인·이더리움 등을 지키는 타원곡선 암호를 무력화하는 데 필요한 자원이 기존 학계 추정치보다 약 20분의 1로 줄었다고 분석했다.
표준 초전도 큐비트 구조를 가정하면 물리 큐비트 50만 개 미만으로 몇 분 안에 암호를 풀 수 있다는 계산이다.
공격 알고리즘의 절반을 미리 계산해 두면 공개키가 노출된 뒤 개인키를 알아내기까지 9~12분이면 된다는 분석도 내놨다.
연구진은 양자 위협이 당장 임박한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도 "어느 시나리오에서든 가장 안전한 선택은 PQC로의 즉각적인 전환"이라고 강조했다.
백서에 따르면 공개키가 이미 노출돼 공격 위험에 놓인 비트코인은 약 690만 개에 이른다.
이 문제는 가상자산만의 일이 아니다.
인터넷 뱅킹, 공인인증, 전자정부, 군 통신 등 현대 디지털 사회의 보안은 대부분 RSA나 타원곡선 같은 공개키 암호에 기대고 있다.
충분히 강력한 양자컴퓨터가 등장하면 이 암호들이 한꺼번에 무력화될 수 있다.
'Q데이'는 미래, 위협은 현재진행형
보안 업계가 특히 경계하는 것은 '지금 저장하고 나중에 해독(Store Now, Decrypt Later)'하는 공격이다.
공격자가 오늘 암호화된 데이터를 대량으로 빼돌려 보관해 두었다가, 양자컴퓨터가 완성된 뒤 한꺼번에 풀어내는 방식이다.
국가 기밀, 의료 기록, 금융 정보처럼 수십 년간 비밀이 유지돼야 하는 데이터는 Q데이가 오기 전에도 이미 위험에 놓여 있는 셈이다.
전환에 걸리는 시간도 변수다.
암호는 서버와 인증서, 결제 단말기, 스마트카드, 사물인터넷(IoT) 기기까지 시스템 곳곳에 깊이 박혀 있다.
이를 모두 찾아내 교체하려면 수년이 걸린다.
위협이 현실화된 뒤에 대응을 시작하면 이미 늦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구글 2029년, 미국 정부 2031년… 시한 줄줄이 당겨져
구글은 2029년 말까지 자사 시스템과 제품, 서비스 전반을 PQC로 전환하겠다는 목표를 공식화했다.
암호화뿐 아니라 인증 체계까지 포함한 계획으로, 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소(NIST)가 제시한 장기 일정보다 빠르다.
미국 정부도 올해 6월 행정명령을 통해 연방기관의 전환 시한을 크게 앞당겼다.
2030년 말까지 주요 시스템의 암호키 교환 체계를, 2031년 말까지 전자서명 체계를 양자내성암호로 바꾸도록 했다.
기존 목표였던 2035년보다 4년가량 이른 일정이다. 정부 계약업체에도 관련 규정 준수를 요구하기로 했다.
국정원, 2029년 PQC 탑재 의무화… "2035년 목표 당기는 방안 협의"
국가정보원은 지난달 '양자내성암호 전환 종합 추진계획'을 공개했다. 2대 전략, 6대 과제, 59개 세부과제로 짜인 이 계획에는 기술 확보와 제도 정비, 암호 체계 전환 지원, 인증 인프라 고도화, 산업 기반 구축 등이 담겼다.
국정원은 국내외 알고리즘 7종을 검증 대상으로 공개했다.
키 캡슐화(KEM) 분야 3종과 전자서명 분야 4종이다.
키 캡슐화 분야는 내년 1월 검증 대상을 정하고 2028년 1월 검증을 거쳐 2029년 1월부터 탑재를 의무화한다.
전자서명 분야는 2028년 1월 대상을 선정하고 2년 뒤 의무화할 계획이다.
내년부터는 국가·공공기관의 사이버보안 실태 평가에 PQC 전환 노력을 반영해 전환을 독려한다.
국정원의 목표는 2035년까지 국가 전반의 PQC 전환을 마치는 것이다.
다만 미국이 시한을 2031년으로 당긴 만큼, 국정원도 이 시점을 앞당기는 방안을 관계 부처와 협의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의료·에너지·행정 분야에서 진행해 온 PQC 시범 전환 사업을 올해 통신·금융·교통·국방·우주 등 5대 핵심 분야로 넓혔다.
2030년까지 5년간 자율 전환·통합 관리 플랫폼, 초경량 하드웨어용 PQC 최적화, PQC와 양자암호통신(QKD) 결합 기술 등 기술 개발도 추진한다.
정부는 2030년까지 PQC 전주기 기술 자립을 완성한다는 목표다.
"우리 회사 암호가 어디 있는지부터 파악해야"
전환의 첫 단계는 '암호 자산 목록화'다.
자사 시스템이 어떤 암호 알고리즘과 인증서, 키 관리 체계를 어디에 쓰고 있는지부터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다음 보존 기간이 긴 민감 데이터를 우선 보호하고, 공급망 전반의 암호 의존성을 점검한 뒤 PQC 적용이 가능한 시스템으로 단계적으로 옮겨 가야 한다.
새로운 알고리즘으로 쉽게 바꿀 수 있도록 설계하는 '암호 민첩성(Crypto Agility)' 확보도 과제다.
PQC 알고리즘은 기존 암호보다 키와 서명 크기가 커서, 성능이 제한된 IoT 기기나 금융 단말에 적용하기 까다롭다.
수많은 레거시 시스템을 교체하는 비용 부담도 크다.
이 때문에 대기업과 달리 중소기업이나 지자체는 전환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양자 위협은 '언젠가 올 문제'가 아니라 '이미 시작된 문제'다.
Q데이가 정확히 언제 올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날이 오기 전에 전환을 끝내야 한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