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투자 7조 달러의 이면…"장부에 안 잡힌 빚 더 있다"
정하윤 기자2026.10.18약 5분 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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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 빅테크 '상호 연결 금융' 구조에 경고… 등급 조정은 아직 일러
미국 빅테크들이 AI 인프라 구축에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붓는 가운데, 이들이 재무제표에 드러난 것보다 훨씬 많은 빚을 지고 있을 수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글로벌 신용평가사 S&P글로벌이 공식 공시만으로는 빅테크의 실제 부채 규모를 다 파악할 수 없다고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S&P글로벌의 마크 하비브 디지털 인프라 부문 글로벌 총괄은 최근 영국 런던에서 열린 라운드테이블에서 "우리가 보지 못하는 부채가 더 있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부채가 보고되지 않으면 하이퍼스케일러(초대형 클라우드 사업자)의 공시에 포함되지 않는다"며 "그 부채가 쌓이는 거래를 우리가 평가하지 않는다면 사실상 들여다볼 방법이 없다"고 했다.
S&P는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알파벳, 오라클, 메타, 스페이스X 등 미국 6대 하이퍼스케일러가 2025년부터 2030년까지 데이터센터와 AI 관련 설비에 7조 달러(약 9300조원) 넘게 쓸 것으로 내다봤다.
이 기간 이들 기업의 잉여현금흐름은 적어도 내년까지 마이너스를 벗어나기 어려울 것으로 봤다.
데이터센터 보증·리스… 장부 밖으로 빠지는 빚
하비브 총괄이 특히 주목한 것은 '상호 연결 금융' 구조다.
빅테크가 데이터센터를 직접 사들이지 않고 특수목적법인(SPV)이나 외부 사업자가 짓게 한 뒤 장기 임차료를 내는 방식, 또는 대형 데이터센터 건설이나 소형 AI 기업의 자금 조달을 사실상 보증해 주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이렇게 하면 실질적인 상환 부담은 빅테크가 지면서도 대차대조표에는 부채로 잡히지 않는다.
다만 S&P는 이런 순환형 금융이 빅테크 재무구조에 부채를 얼마나 더 얹을지는 아직 추산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다른 분석들도 같은 쪽을 가리킨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미국 5대 빅테크의 장부 외 부채가 4년 새 8배로 불어나 1조6500억 달러에 이르렀다고 분석했다.
장부에 정식으로 기재된 부채 1조3500억 달러보다도 많은 규모다.
그래픽처리장치(GPU)와 서버 장기 구매 계약, 데이터센터 운영사와 맺은 임차 계약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무디스 역시 하이퍼스케일러의 부외 약정을 약 1조2000억 달러로 집계했고, 이 가운데 8200억 달러 이상이 아직 짓고 있는 데이터센터와 관련된 것으로 봤다.
무디스는 이를 앞으로 막대한 임차료 지급 의무를 남기는 '부채성 채무'로 규정했다.
이런 거래가 회계 규정을 어긴 것은 아니다.
대부분 분기 보고서 주석에는 적혀 있고, 데이터센터가 가동을 시작하면 상당 부분은 장부상 부채로 옮겨진다.
문제는 투자자와 신용평가사가 실제 레버리지를 제때 정확히 가늠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현금 부자'도 빚 내는 시대… 채권시장엔 피로감
S&P 집계에 따르면 하이퍼스케일러와 엔비디아 등 관련 기업이 올해 상반기에만 2250억 달러어치 채권을 발행했다.
연간으로는 40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막대한 영업현금으로 설비투자를 자체 충당하던 빅테크가 외부 차입에 기대는 구조로 바뀌고 있다는 뜻이다.
알파벳은 올해 2분기 상장 이후 처음으로 잉여현금흐름 적자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에서는 이미 경계 신호가 나온다.
엔비디아가 투자한 코어위브 등 이른바 '네오클라우드' 기업과 AI 인프라 업체가 발행한 채권 가격은 최근 몇 주 사이 크게 떨어져 스트레스 구간에 들어섰다.
장부 밖에서 조달하는 자금일수록 금리 부담도 크다.
메타가 데이터센터 자금을 위해 세운 SPV는 6%대 중반 금리를 감수해야 했다.
S&P는 지난 7월 AI 투자의 수익화 경로가 불확실하다는 이유로 오라클 신용등급을 투자등급의 가장 낮은 단계인 'BBB-'로 내린 바 있다.
다만 S&P는 당장 등급을 손볼 단계는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하비브 총괄은 최근 AI 관련 채권 약세가 신용등급 변경을 강제할 만큼 큰 괴리는 아니라고 진단했다.
그는 하이퍼스케일러 등급에 가장 큰 위험은 기대한 수익이 실현되지 않는 것이라며, 투자 규모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더 늘거나 경쟁이 지나치게 치열해져 수익성이 떨어지면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무디스 역시 빅테크가 여전히 기업 가운데 가장 탄탄한 재무구조를 갖추고 있어 투자등급이 곧바로 위협받는 상황은 아니라고 봤다.
한국 반도체·전력기기에도 파장 가능성
빅테크의 자금 사정은 국내 산업과도 직결된다.
데이터센터 투자 속도가 조달 비용 상승이나 채권시장 경색으로 늦춰지면 메모리 반도체, 변압기 같은 전력기기, 서버 부품을 공급하는 한국 기업의 수주 흐름에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실적이 사상 최대를 기록하는 와중에도 국내 반도체·전력기기 종목이 AI 투자 지속성에 대한 우려로 크게 흔들리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업계에서는 이달 말부터 이어지는 빅테크 3분기 실적 발표에서 나올 설비투자 계획과 함께 장부 밖 약정을 얼마나 투명하게 공개하는지가 시장 신뢰를 가를 변수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AI 인프라 경쟁이 기술 싸움을 넘어 누가 더 오래 자금을 버틸 수 있느냐를 겨루는 '신용의 싸움'으로 옮겨 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