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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은퇴는 끝이 아닌 이직" 시니어의 경력과 기술을 사고판다

박정아 기자2026.10.28약 7분 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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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는 끝이 아닌 이직" 시니어의 경력과 기술을 사고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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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매칭 플랫폼부터 '전문가 구독'까지, 중장년 인력 시장이 바뀐다 정년을 맞아 회사를 나온 숙련 인력과 경험 있는 사람이 필요한 기업을 이어주는 시장이 빠르게 커지고 있다. 일자리를 찾는 시니어는 늘었지만 기존 채용 시장은 이들을 제대로 연결하지 못했다. 그 빈틈을 AI 매칭 플랫폼, 전문가 구독 서비스, 기술직 재교육 프로그램이 채우고 있다. ◆ 일하는 60세 이상 730만 명, 그러나 고용률은 뒷걸음 시장이 커지는 배경에는 인구 구조의 변화가 있다. 지난 9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60세 이상 취업자는 730만1000명으로 1년 전보다 17만2000명 늘었다. 전체 취업자 증가 폭(11만3000명)보다 많다. 하지만 같은 기간 60세 이상 인구가 49만5000명 늘면서 고용률은 48.3%에서 47.9%로 오히려 떨어졌다. 60세 이상 고용률은 4월부터 6개월 연속 전년 같은 달보다 낮았다. 65세 이상 취업자는 25만 명 넘게 늘었지만, 60~64세 취업자는 약 8만 명 줄었다. 활동 상태를 '쉬었음'으로 답한 60세 이상은 121만7000명으로, 전체 '쉬었음' 인구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했다. 일하려는 고령층은 계속 늘어나는데 이들을 받아줄 일자리 연결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2차 베이비부머 954만 명의 은퇴가 본격화되면서 이 문제는 개인의 노후를 넘어 국가 경제 전체의 과제가 됐다. ◆ "경험도 의지도 있는데, 연결이 안 된다" 서울시50플러스재단이 서울 중장년 약 1만 명을 조사했더니, 서울에 사는 40~60대 약 350만 명 중 289만 명이 지금의 경제활동에 변화를 원했다. 그중 180만 명은 임금 근로를 희망했다. 그런데 재취업을 고민하는 중장년의 56.6%는 시장에 자기 자리가 있을지 불안해했고, 자신의 고용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보는 비율은 40.3%에 그쳤다. 전문가들은 이를 개인의 역량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로 본다. 구직자는 자신을 원하는 기업이 어디 있는지 모르고, 기업은 필요한 역량을 갖춘 중장년이 누구인지 모른다. 서로를 찾지 못하는 이 '정보의 벽'을 허무는 것이 시니어 일자리 시장의 과제다. ◆ 사무직은 넘치고 기술직은 모자란 '미스매치' 수요와 공급이 엇갈리는 지점도 분명하다. 중장년 구직자가 가장 원하는 일은 경영·사무·금융직으로, 희망 비중이 39.7%에 이른다. 하지만 기업이 실제로 내놓는 사무직 일자리는 22.0%뿐이다. 기술직은 정반대다. 중장년에게 제공되는 일자리의 25.5%가 기술직인데, 이를 원하는 구직자는 11.5%에 불과하다. 전기·전자 설비나 기계 조작처럼 자격증이 필요하고 사회적 인식도 좋지 않은 분야를 구직자들이 피하기 때문이다. 현장에서는 이 미스매치를 오히려 기회로 본다. 기업 수요는 분명한데 공급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장년 직업훈련 과정을 거쳐 진로를 바꾼 사례도 나오고 있다. 16년간 은행 청원경찰로 일한 퇴직자가 에어컨 설치·유지보수 과정을 마치고 일찍 취업했고, 15년 동안 온라인 마케팅을 하던 사람이 에어컨 분해 세척 기술을 배워 창업했다. 건축·인테리어 경력자는 공동주택 사전 점검 과정을 거쳐 현장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다만 무작정 자격증부터 따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기계, 전기, 산업안전처럼 자격증이 직무의 출발점인 분야는 따로 있다. 인기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뛰어들기보다는 자신의 경력과 어떻게 이어지고 실제 취업으로 연결되는지부터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 AI가 찾아주는 일자리… 구직 35분에서 2분으로 디지털 장벽을 낮추려는 기술 기업들의 시도도 활발하다. 한 에이지테크 스타트업은 국내 25개 구인구직 플랫폼에 올라오는 연간 약 110만 건의 중장년 채용 정보를 AI로 모아 분류하는 서비스를 내놨다. 근무시간, 업무 강도, 직무 유형 같은 '시니어 친화 기준'으로 정리한 뒤, 챗봇과 대화만 하면 조건에 맞는 일자리를 추천해준다. 평균 35분 넘게 걸리던 검색과 지원 절차가 2분으로 줄었다. 큰 글씨와 단순한 버튼, 음성 안내도 넣었다. 복잡한 구직 사이트 앞에서 포기하던 고령층의 문턱을 낮춘 것이다. 40~60대 구직자와 기업을 연결하는 중장년 전용 채용 플랫폼과, AI 역량 교육과 일자리 매칭을 묶은 금융권의 중장년 지원 프로그램도 잇따라 등장했다. 정부와 공공기관도 중소기업과 구직자를 일대일로 연결하는 일자리 매칭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다. ◆ 사람 대신 '경험'을 구독한다 고경력 전문가 시장에서는 더 새로운 거래 방식이 자리를 잡고 있다. 임원급 인재를 정규직으로 뽑기 어려운 스타트업과 중소기업이 퇴직 전문가의 경험을 필요한 기간만 '구독'하는 방식이다. 한 전문가 구독 플랫폼은 대기업·중견기업 임원과 CEO 출신 약 120명을 확보해 마케팅·영업·재무·인사·글로벌, 그리고 제조 현장의 환경·보건·안전(EHS)까지 11개 분야에서 기업과 연결하고 있다. 기업이 고민을 입력하면 AI가 문제를 분석해 적합한 전문가 3명을 추천한다. 직함만 맞추는 것이 아니라, 그 전문가가 과거에 어떤 문제를 직접 해결해봤는지를 기업의 현재 과제와 연결하는 방식이다. 한 커머스 기업은 영업본부장 출신 전문가를 월 200만 원 수준에 구독했다. 이 전문가는 주 1회 회사를 방문하며 3개월 동안 조직의 역할 분담을 정리하고 성과 관리 체계를 만들었다. 이 플랫폼은 올 하반기 전문가 풀을 300명 규모로 늘릴 계획이다. 경영진 역할을 파트타임으로 맡는 '프랙셔널 C레벨', 핵심 인력이 휴직하거나 퇴사했을 때 몇 달간 자리를 채우는 대체 인력, 여러 전문가가 팀을 꾸려 수행하는 프로젝트 등 거래 형태도 다양해지고 있다. 중대재해 대응과 안전관리처럼 새로 전문성이 요구되는 분야에서 수요가 특히 빠르게 늘고 있다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 "AI 시대는 오히려 중장년에게 기회" AI의 확산이 시니어에게 불리할 것이라는 통념과 다른 시각도 나온다. 기초적인 업무는 이제 신입보다 AI가 더 잘 처리한다. 대신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판단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더 귀해졌다. 바로 중장년의 강점이다. 다만 조건이 있다. 기업들이 공통으로 꼽는 1순위 요구사항이 AI 활용 능력이다. 부장으로 퇴직했다면 그 경험은 살리되 AI는 배워 오라는 것이다. 연령대별로 원하는 일이 다르다는 점도 정책이 고려해야 할 부분이다. 40대는 생계 목적이 87.1%로 압도적이고 전일제 근무와 신기술 교육을 원한다. 50대는 생계와 자아실현을 함께 고민하며 이직과 전직을 준비한다. 60대는 단시간 근무나 사회공헌형 일자리를 더 선호한다. 전문가들은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모두를 지원하는 방식으로는 누구도 제대로 돕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 "은퇴는 끝이 아니라 이직" 시니어 일자리 시장이 제대로 자리 잡으려면 과제도 남아 있다. 플랫폼에 등록된 사람 수보다, 실제로 일자리가 이어지고 기업이 성과를 냈다는 사례가 쌓여야 한다. 기업은 인건비 지원보다 채용한 사람이 현장에서 일을 해내는지를 더 중요하게 보기 때문이다. 대기업 출신 고경력자보다 저임금 일자리에 머무는 훨씬 많은 중장년이 더 큰 위험에 놓여 있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고경력 전문가를 위한 시장과 취약 계층을 위한 일자리 정책을 나눠 설계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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